홈플러스 30년의 역사
삼성물산 1호점 탄생부터 회생절차 폐지까지
1997년 대구에서 출발한 한국 2위 대형마트가 2026년 7월 파산 기로에 선 이유
삼성 → 테스코 → MBK파트너스, 세 번의 주인 교체가 만든 비극
2026년 7월 3일,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습니다. 2주 이내(7월 17일까지) 2,000억원을 조달해 즉시항고에 나서지 않으면 파산 절차에 들어갑니다. 10만 명 이상의 직원과 협력사 중소상인들의 생계가 달린 결정입니다.
하지만 이 결말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1997년 삼성물산이 대구에 1호점을 열었던 날부터, 2015년 MBK파트너스가 7조 2,000억원에 인수하던 날, 그리고 그 이후 10년간의 자산 매각과 투자 실패가 지금 이 결말을 만들었습니다. 30년의 역사를 한 장에 정리합니다.
I. 지금 어떤 상황인가: 회생절차 폐지의 의미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는 7월 3일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습니다. 홈플러스가 제출한 수정 회생계획안의 수행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핵심 점포 67개로 재편하겠다는 계획도 2,000억원 자금 조달 실패로 실행이 어렵다고 봤습니다.
메리츠 측은 MBK와 김병주 회장의 연대보증을 조건으로 1,000억원의 대출금을 예치했다며 나머지 1,000억원은 MBK가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MBK는 1,000억원에 대한 연대보증 의사는 있지만 나머지 1,000억원을 마련하거나 이에 대한 보증은 여력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회생절차 폐지에 대한 법원 결정에 홈플러스는 14일 이내에 항고할 수 있습니다. 즉, 7월 16일까지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나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 또는 제3의 기업이 나서서 인수 의향을 밝히고 2,000억원을 마련해낸다면 회생절차 폐지는 유보될 수 있습니다.
II. 탄생: 삼성물산이 대구에서 시작한 이야기 (1997~2011)
홈플러스는 1997년 9월 대구에 삼성홈플러스 1호점을 열며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삼성물산 유통부문에서 출발한 홈플러스는 이마트와 함께 국내 대형마트 시장을 대표하는 유통채널로 성장했습니다.
수도권 내 할인점 경쟁을 피해 지방에 먼저 진출한 이유도 있었지만, 삼성의 모태인 삼성상회가 대구에서 시작된 것도 주요 이유입니다. 삼성물산 자본금 3,000억원을 들여 대한방직·제일모직 대구공장 부지에 개점했습니다.
외환위기가 부른 파트너십: 삼성 + 테스코
출발 직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삼성물산은 1999년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에 경영권과 지분 49%를 넘겼습니다. 이후 홈플러스는 삼성물산과 테스코의 합작법인 ‘삼성테스코’ 체제로 새 출발했습니다.
삼성테스코 체제에서 홈플러스는 공격적으로 몸집을 키웠습니다. 2005년 부산·경남지역 유통업체 아람마트를 인수했고, 2008년에는 이랜드그룹의 홈에버를 품었습니다. 이로써 수도권 약점을 극복하며 이마트와 진정한 양강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2011년 3월 법인명이 ‘삼성테스코’에서 ‘홈플러스’로 변경됐고, 7월에는 삼성물산이 잔여 지분 5.32%를 매각하면서 홈플러스는 테스코의 완전자회사가 됐습니다.
III. 전성기: 해외 테스코 중 최고 알짜 평가 (2001~2015)
홈플러스는 당시 테스코의 전체 매출에서 8% 정도를 책임지는 등 해외 법인 중 최고 알짜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삼성 브랜드의 신뢰와 테스코의 글로벌 유통 노하우가 결합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먹구름: 개인정보 판매 스캔들 (2015)
홈플러스는 2011~2014년 10여 차례 경품행사로 수집한 개인정보 2,400만여 건을 보험사에 231억 7,000만원에 판매한 혐의로 2015년 2월 기소됐습니다. 홈플러스는 생년월일, 자녀 수, 부모 동거 여부까지 적어야 경품 추첨에 넣어주는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이 사건은 소비자 신뢰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IV. 운명의 전환: MBK파트너스 7.2조원 인수 (2015)
테스코 영국 본사가 회계부정 스캔들로 엄청난 위기에 처하면서 2015년 매물로 나오게 됩니다. 수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토지·부동산 가치와 5~7,000억원에 이르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감안하면 매각가는 최소 5조에서 많게는 7~8조까지 거론됐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국민연금공단에서 1조원이라는 금액을 MBK파트너스에 투자했습니다. 사모펀드는 이익을 위한 기업이지 삼성·LG처럼 나라를 위한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연금공단의 투자 결정에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MBK의 약속과 현실
| MBK 인수 시 약속 | 실제 결과 |
|---|---|
| 인위적 인력 구조조정 없음 | 매장 매각·폐점으로 사실상 대규모 고용 불안 |
| 매장 리뉴얼 공사 진행 | 약속 후 5년이 지난 2020년에야 일부 진행 |
| 홈플러스 기업가치 제고 후 매각 | 자산 매각으로 기업 가치 3조원 하락 |
| 고용 100% 승계 | 점포 폐점 시 희망퇴직 등 사실상 인력 감축 |
MBK 인수 이후 홈플러스는 재무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일부 매장을 매각한 뒤 다시 빌려 쓰는 재임차 방식을 추진했습니다. 단기 유동성 확보에는 도움이 됐지만 장기적으로는 임차료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2018년 12조 5,813억원이던 홈플러스 자산은 2022년 9조 8,483억원으로 4년 만에 3조원이나 줄었습니다.
V. 왜 망했나: 몰락의 5가지 원인
7.2조원 인수 시 차입금 비중이 높아 이자 부담이 구조적으로 고정됐습니다. 재무구조 개선 명분의 자산 매각이 오히려 장기 경쟁력을 갉아먹었습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소비자 구매가 이커머스 위주로 재편됐습니다. 쿠팡·네이버쇼핑·SSG닷컴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홈플러스의 디지털 전환은 결정적으로 늦었습니다.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보다 재무구조 개선에 치중한 점이 핵심 문제로 꼽힙니다. 중장기적 투자 여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고 점포 경쟁력 강화도 상대적으로 늦어졌습니다.
의무 휴업일 지정, 영업시간 제한, 신규 출점 규제 등 소상공인 보호 정책이 강화되면서 대형마트 업계 전체의 성장이 구조적으로 막혔습니다.
2025년 11월 부로 펀드 출자자 환급기한이 도래했습니다. 오프라인 유통업 전망 악화로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아 MBK의 투자 회수 전략이 완전히 막혔습니다.
지난해부터 납품업체 대금 지급 지연과 지연이자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협력사들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상품 공급 차질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됐습니다.
VI. 30년의 연대기: 탄생부터 파산 기로까지
VII. 파산이 현실화되면: 파장과 시사점
직접 피해: 10만명과 중소 협력사
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10만명에 이르는 노동자들과 중소 상인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건데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밝혔습니다. 협력사 미지급 대금 문제도 수천억원 규모로 추산됩니다.
유통업계 재편
이마트·롯데마트 양강 체제로 재편 가속화. 빈 점포 부지의 물류센터·데이터센터 전환 가능성. 쿠팡 등 이커머스 기업의 오프라인 거점 확보 기회로 부상 가능성.
사모펀드 먹튀 논란의 교훈
사모펀드가 회사를 사고 파는 건 흔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일반인들도 많이 이용하는 3대 대형마트를 가지고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인수 후 해당 회사를 키워서 파는데 비해, 인수 후 확장은커녕 점포 매각으로 제 살 깎아먹기만 반복해서 운영이 목적이 아닌 ‘먹튀’가 목적으로 보인다는 분노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유통업에 대한 사모펀드 레버리지 인수의 위험성, 이커머스 전환 속도의 중요성, 그리고 PEF 운용에서의 ESG 책임 문제가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부각됐습니다. 홈플러스 실패는 개별 기업의 실패를 넘어 오프라인 유통업 전체의 구조 변화를 상징합니다.
